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듣도 보도 못한 재난으로 인해 세계가 위기에 처해있다. 영어로 재난은 disaster 이다. 이 말은 부정을 의미하는 ‘dis’ 와 별을 의미하는 ‘astro’ 의 합성어이다. 밤 하늘에 별이 없다면 세상은 칠흙같은 어두울 것이다. 이 어두움에 빛을 비추어 주는 존재가 리더이다. 다시말해 리더십은 위기 중에 들어난다. 그렇다면 위기야말로 리더가 리더십을 발휘할 절호의 기회이다.

노예제도를 둘러싼 갈등으로 미국이 두동강 나있었던 위기에 아브라함 링컨이라는 위대한 리더가 들어났다. 제2차세계대전이라는 어두움의 시기에 윈스턴 처칠이 빛을 발했다. 한 때 포드, GM 과 함께 미국 자동차 업계 빅3 중 하나였던 크라이슬러가 공전의 적자로 침몰하고 있을 때 크라이슬러의 회사의 회장이 되어 회사의 운명을 뒤바꾸어 놓았던 탁월한 리더는 아이아코카이다. 아이아코카가 망해가는 회사의 회장으로 온 이유도 개인적 위기 때문이었다. 그가 포드 회사의 사장으로 탁월하게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을 때 헨리포드 회장은 그의 리더십에 위협을 느꼈다. 결국 아이아코카는 해고되었고 직장을 잃은 그는 크라이슬러에 입사하여 신화를 창조했다. 그렇다면 위기야 말로 리더가 환영해야 할 “위대한 기회”이다.

위기중에 조직을 탁월하게 이끌기 위해 리더가 해야 할 첫 번째 과업은 위기의 본질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것이다. 밤 하늘에 별이 없어 한치 앞이 보이지 않을 때에 대중은 날카로운 분석에 근거하여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를 추종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정확하게 분석할 능력이 없다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행동강령을 제시할 수 없다. Covid-19 이라고 불리우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실체는 무엇인가? 전염병이다. 2019년 연말부터 중국의 우한 지역을 배경으로 언급되더니 2020년 1월 29일 이미 중국 전체에 6000 명 이상 전염되어 몇 년전 있었던 SARS 보다 인류에게 더 큰 위협이 되어버렸다. 그리곤 두 달이 지난3월 29일 오후 10시 현재까지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 세계에 722,435 명의 사람을 감염시켰며33,997명의 목숨을 빼앗아 갔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 증가율을 문자 그대로 기하급수적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염병이라면 일단 우리는 모임을 자제해야 한다. 전염병의 실체를 잘못 이해하여 계속 사람들이 회집한다면 그 결과는 겆잡을 수 없다. 아쉬웁게도 어떤 리더들은 일제 시대에도, 전쟁 중에도 예배를 중단하지 않았는데 한국 정부가 정치적 프레임을 교회에 걸어 예배를 못드리게 한다고 이 사태를 분석하고 있다.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가? 내 교회의 지붕아래 함께 모이는 것인가? 그렇다면 예배의 장소에 대해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요4:21) 라고 말씀하면서 장소는 전혀 예배의 핵심이슈가 아니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의도는 무엇인가?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인해 성전이 파괴된 채 바벨로니아에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의 예배는 모두 허사였는가? 레위기 13장은 고대인들이 전염병이라고 생각했던 피부질환 (개역개정에는 “나병 같은 것”(2절) 으로 번역) 증세를 보이는 환자가 이스라엘 공동체에 나타났을 때 그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제사장은 그 환자를 7일 동안 보호 관찰하라. 그 이후 병세가 호전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7일간 더 보호관찰하라. 이때 그는 격리되어 공동체의 예배에 참여 할 수 없다. 여기에서 보듯 구약성경은 전체의 유익을 위해 개인이 공적예배를 드려야 하는 의무와 권한 조차 제한하고 있다. 지금은 누가 바이러스의 보균자인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전체의 유익을 위해 잠시 공동체의 예배를 다른 방식으로 대체하는 것이 오히려 성경적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정부가 금지하는 것은 예배가 아니다. 정부가 금지하는 것은 사회적 모임일 뿐이다.

위기의 본질을 분석했으면 이제 리더는 해결책을 찾아내어야 한다. 해결책을 찾는데는 남다른 안목과 융통성, 또 창의력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잇사갈 자손 중에게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두목이 이백명이니 저희는 그 모든 형제를 관할하는 자며” (대상 12:32). 일반적으로 “리더십은 영향력”이라고 정의한다.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시세를 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시세는 오래전에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테크놀로지로 기울어 버렸다. 이미 70% 이상 온라인이었던 교육이 이번 위기로 인해 100% 온라인이 되었다. 대부분의 직장은 재택근무로 시스템을 바꾸었다. 그런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회사는 이번 사태가 길어질 때 도산할 확률이 높다. 다아윈에 의하면 장구한 인류 역사에 살아남은 개체는 가장 강한 종이나 가장 영리한 종이 아닌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한 종들이다.

온라인이 대세가 된 지금 아직도 온라인 예배가 예배학적으로 옳으냐 그르냐에 대한 토론을 하고 있다면 당신은 사상가일수는 있으나 리더는 아니다. 리더는 자신에게 맡겨진 과업의 완수하기 위해 융통성있게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 평범한 리더는 개척교회가 온라인 테크놀로지를 감당할 기술도 비용도 없음을 한탄할 것이다. 그러나 창의적 리더는 스마트 폰, 카카오톡, Youtube, Facebook Live 등 이미 일반화된 방편을 무료로 활용하여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과 이미 의미있게 소통하고 있다. 어떤 융통성있는 리더는 드라이브인 예배 방식을 활용하여 예배하기 시작했다. 융통성과 창의성은 위기 중에 리더십에 필수적 요소이다. 나아가 이번 위기를 통해 온라인 사역기반을 구축하여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이번 위기는 언제나 목사가 주도하는 사역을 한차원 뛰어넘어 각 가정의 가장과 개인을 영적 지도자로 개발할 수 있는 위대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어쩌면 온라인은 두번째 종교개혁을 가져달 줄 매개가 될른지도 모른다.

부활은 죽음을 전제한다.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위기가 없었다면 부활의 환희는 없었을 것이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위기가 우리의 사역이 다시 일어나는 부활의 기회가 될 수 도 있다. 리더는 위기의 때에 빛을 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