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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기 목사의 리더십 (2)

리스크 테이킹: 고도원은 리스크 테이킹 (Risk taking) 을 ‘위험감행’ 이라고 번역했다.  이것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엄연히 알면서도 기꺼이 행동하는 ‘도전정신’이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위험을 두려워하면 시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인생도 사업도 위험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립니다.”  대조동 천막교회시절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이 떠나고, 질병이 치유되고, 방언이 터질 때 자신이 속한 교단에서 조차 조용기 전도사를 소환하여 축사와 신유사역을 금지시킨적이 있다.  만일 조용기 전도사가 계속해서 그런 ‘무당 노릇’을 한다면 교단은 그와 그의 교회를 교단에서 제명시킬 것이라고 주의를 주었다.  20대 초반의 경험이 없는 전도사로서는 엄청난 위험이었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바를 양보하지 않고 실천하는 도전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1964년 3000 여 성도를 모신28세의 목사로서 설교 중 혼절하여 교회 뒤에 있는 적십자 병원에 옮겨졌을 때 의사의 진단은 청천벽력이었다.  “목사님의 몸은 20 대 후반 청년의 몸이지만 목사님의 신경체계는 70대 후반의 노인입니다.  목사님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당장 목회를 그만두고 절대안정을 취하는 것입니다.  이런 몸으로 목회는 고사하고 아직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병실에서 애타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말씀을 묵상하던 중 그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 . .  하나님을 찬미하며 . . .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하시니라”를 발견하였다 (행2:46-47).  또 평신도였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직업인으로 자신의 일을하면서 복음을 위해 바울과 동역하는 것도 발견하였다 (행19:1-3; 18-19).  더욱 놀라운 것은 평신도였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성경에 능통” 했던 아볼로에게 성경을 더욱 완전하게 설명하여 그를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도 세워주는 모습도 마음을 사로잡았다 (행18:27-28).  그는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정황에 근거하여 그 당신 존재하지 않았던 창의적 사역을 착상했다.  구역예배의 탄생이다.  절박한 필요는 언제나 발명의 어머니이다.

퇴원 후 그는 교회의 장로들과 남자 집사들을 소집하여 자신이 착상한 구역사역의 개념을 설명하고 구역장으로 섬겨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총체적인 반대 뿐이었다.  그런 모델을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순종하겠다고 나온 사람들은 권사들과 여집사들 뿐이었다.  그래서 구역예배와 구역장은 여성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이에 대한 남성들의 반대는 극에 달했다.  그래서 그는 여성들이 남성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의미로 구역장들에게 두건을 쓰게 했다 (최자실 목사는 자신이 남자인 조용기 목사의 권위 아래 있다는 상징으로 항상 두건을 쓰고 사역했다).  또 구역장은 담임목사 사역의 대리자라는 의식을 구역장과 교인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아무리 바빠도 매주 열렸던 구역장 훈련은 자신이 직접 담당했다.

구역예배에 대한 반대는 단지 자신의 교회 내부 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1960년대와 70년대 한국교회가 순복음 중앙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한 이유 중 하나는 교회를 떠나 집에서 모이는 “구역예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용기 목사는 자신의 확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 결과 오늘 한국의 거의 모든 교회는 구역예배를 실행하고 있다.  나아가 집에서 모이는 소그룹 사역은 전세계 교회로 번져나갔다.  조용기 목사의 구역예배를 벤치마킹하여 G-12를 탄생시킨 시저 카스탈라노스 목사는 콜롬비아에서 자신의 교회를 50 만 성도를 갖은 초대형 교회로 성장시키기까지 하였다.

조용기 목사의 리스크 테이킹은 구역예배의 실행에서 끝나지 않았다.  어느때 부터인지 그의 내면세계에는 기도할 때 사람들이 특정 질병에서 놓여나는 환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주님의 음성이 메아리쳤다.  “이런 저런 사람들을 지금 내가 고치고 있다.  회중에게 선포하라.”  소스라치게 놀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주님, 만약 그랬다가 낫지 않으면 저는 개망신을 당합니다.  나아가 주님의 교회도 절단납니다.”  그러나 그가 위험부담을 각오하고 주님의 음성에 순종했을 때 그의 사역에는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그는 세계적인 신유의 사역자가 되었다.

1960년대 부터 서대문 순복음 교회는 찬송가와는 별도로 복음성가를 불렀다.  이로인해 이단이라는 비난을 수없이 받았다.  그러나 조목사는 굽히지 않았다.  그 결과 1990년대 한국교회에는 경배와 찬양 운동초차 일어났다.  현재 복음성가를 부르지 않는 교회는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1967년 현찰 백만원으로 10 억 공사의 공사비가 들었던 여의도 성전을 짓겠다는 결정, 1976 년 한국이 아직 가난했던 시절 300 만불을 들여 Church Growth International 이라는 국제사역 부서를 창설하는 결정, 1988년 아직 군사정부하에 국민일보를 창설하는 결정등 조용기 목사는 계산이 나오지 않는 무모한 결정을 과단성있게 내렸다.

리더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결정을 내렸을 경우 감당해야 할 리스크 (위험)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에 안전지역이 존재하는가?  헬렌 켈러는 말했다.  “안전이란 미신에 불과하다.  자연계에도 인간사에도 완벽한 안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당면한 위험을 피한다고 해서 궁극적으로 안전을 보장할 수는 없다.  용감하게 모험할 수 없는 인생은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다.”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결정을 위한 준거틀로서 분명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리더는 현실을 분명하게 진단하여 방향을 설정한 이후 몇몇 위험요소에도 불구하고 명쾌한 결정을 내린다.  그 이후 숱한 반대와 싸우면서 자신이 내린 결정을 수행한다.  대중은 이런 리더를 따른다.  심지어 대중은 이런 리더를 비방하면서도 그를 따른다.  반면 통렬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은 ‘사려깊은’ 리더일 수는 있으나 약한 리더십을 소유한 리더인 경우가 많다.  나아가 리더십이 약한 리더는 자신의 지지기반을 조금씩 잃어 가는 것이 리더십의 원리이다.  조용기 목사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과감한 결정을 통해 전대미문의 성장기회로 전환시키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위험감행’ 능력, ‘도전정신’이 없으면 평범한 리더를 넘어 탁월한 리더로 성장할 수 없다.  탁월함은 언제나 리스크에 내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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