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장은 솔로몬이 다윗의 후계자로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노인이 된 다윗이 아직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자 아도니야는 스스로 왕위에 오르고자 음모를 꾸몄다. 다윗 내각의 고위층이 상당수 이 음모에는 가담했다. 권력의 특성 중 하나는 쉽게 내려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 권력의 구심점인 다윗은 함께 누워있는 젊은 여자를 향해 욕정조차 일어나지 않는 무기력한 노인이다. 그들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윗의 정당성을 가졌으나 다윗보다 젊고 유능한 지도자를 내세워 그를 중심으로 새로운 권력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다. 곧 다윗의 세상이 막을 내리고 아도니야의 세상이 펼쳐질 기세다. 그러나 다윗이 솔로몬을 후계자로 지명하여 공포하는 순간 전세는 역전되었다. 다윗 궁정의 새로운 기반은 이제 솔로몬이다.

기업이나 조직의 CEO가 은퇴해야 할 적기에 은퇴하지 않을 경우 조직 내에 동요가 일어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생각지 않았던 음모도 종종 물 밑에서 진행된다. 조직문화의 이와 같은 단면은 아쉽지만 교회라고 예외가 아니다. 퇴임의 적기에 퇴임하지 않으면 목회자의 영향력 기반이 약해질 뿐 아니라 음모(?) 또한 진행될 수 있다.

최근 빌 하이벨스(Bill Hybels) 목사는 2018년 10월 자신의 은퇴를 앞두고 자신의 뒤를 이어 윌로우크릭교회를 이끌어갈 두 사람의 후임자를 발표하였다. 담임목사 지명자인 Heather Larson은 지난 20년간 하이벨스 목사를 도와 윌로우크릭에서 사역하였으며 2013년 행정수석 목사직 (Executive Pastor)에 임명되어 명실공히 윌로우크릭의 제2인자로 교회를 섬겨왔다. 설교목사(Lead Teaching Pastor)로 지명된 Steve Carter는 하이벨스가 지난 15년 간 주목하였으며 2013년 이후 윌로우크릭의 설교목사로 하이벨스와 함께 교회의 설교사역을 나누어 온 인물이다.

열왕기상 19장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마지막 임무로 세 가지 과제를 부여하신다. 그중 하나는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자신의 후계자로 세우라는 것이다. 엘리야가 엘리사를 찾아내었을 때 그는 소를 몰아 밭을 갈고 있었다. 엘리야는 자신의 겉옷을 엘리사에게 던졌다. 선지자의 권능과 권위를 그에게 전가한다는 상징적 행위이다. 부모와 작별한 엘리사는 자신이 부렸던 소를 도살하고 그 소가 메었던 멍에를 땔감으로 이 소고기를 삶아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이후 엘리야를 따랐다. 행여라도 자신의 이전 생업에 되돌아올 수 있는 여지를 완전히 없애버린 것이다. 이제는 선지 사역에 올인하는 것 밖에 옵션이 없다.

흥미 있는 것은 엘리사가 엘리야의 후임자가 되겠다고 선지자 청빙위원에게 원서를 제출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엘리야가 지정했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도 모세가 지정했으며 다윗의 후계자 솔로몬도 다윗이 지정했다. 물론 엘리사, 여호수아, 솔로몬이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면 엘리야, 모세, 다윗이 이들을 후계자로 지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이벨스의 후임 내정자는 42세 싱글 여성이나 윌로우크릭교회에는 미동도 없었다. 윌로우크릭의 DNA를 누구보다 잘 아는 하이벨스가 회중이 동의할 수 없는 사람을 후임자로 내정했을 리 없다.
열왕기하 2장은 엘리야 생애의 마지막 장면을 담고 있다. 엘리야는 엘리사를 데리고 길갈을 떠나 벧엘, 여리고, 요단을 방문한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약속의 땅에 들어왔던 길을 거꾸로 걷고 있다. 이제 이 스승과 제자는 이스라엘에 주신 주님의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자신들의 행보로 확인하고 있다. 또 그들은 가는 곳마다 선지자의 제자들을 만난다. 하늘 거소를 향해 떠나기 직전 엘리야가 마지막으로 사역한 대상이 제자들이라는 사실에서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 2:2).

NACIE 94 북미 복음 전도자대회에서 빌리 그래함(Billy Graham)이 했던 말을 잊을 수 없다. “저의 사역은 실패입니다. 저는 주님 은혜로 전에 누구도 한 적이 없었던 규모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했던 규모나 그 이상의 규모로 이 사역을 계속해 낼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습니다. 저의 사역은 실패입니다. 여러분은 절대 저의 실패를 답습하지 마십시오.”

불과 며칠 전에 어느 책에서 읽었던 한 구절의 글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그 글을 외워버렸다. 그런데 나도 나이를 먹는지 어느 책에서 그 글을 읽었는지 아무리 되짚어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 글은 이렇다. “후임자를 세우지 못한 것은 리더십의 실패입니다.” 추수감사는 결실에 대한 감사이다. 사역의 최종 결실은 내가 했던 일을 나보다 더 효과적으로 잘할 수 있는 후임자를 세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