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 장은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예수의 무덤을 막고 있던 바위가 옮겨지고 무덤이 열렸다는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듣고 무덤으로 달려간 베드로와 요한은 기막힌 상황을 보았다. 예수의 시신은 오간데 없고 세마포 수의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던 것이다. 이후 9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예수의 부활은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죽은 예수를 다시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의지와 계획에 의해 이루어진 사건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성장하는가> 라고 번역된 John Maxwell 의 책 <The 15 Invaluable Laws of Growth> 에서 Maxwell 은 리더십을 성장시키기 위해 제일 먼저 리더가 알고 실천해야 할 것은 의도성의 법칙이라고 말한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리더십이 축적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는 먹었으나 미숙한 사람은 얼마든지 많다. 리더로서의 성장은 결코 자연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성장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성장을 위한 계획을 수립한 후 주도성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결코 우리는 더 나은 리더로 성장할 수 없다. 예수님의 부활도 하나님의 의도적 작품(?) 이지 자연적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죽은 생명은 부활하는 대신 부폐하는 것이 더 자연스런 일이다.

미국 CIA 의 수석분석가였으며 부국장을 역임한 레이 클라인 (Ray S. Cline) 은 1990년대 세계 각국의 국력을 전략적으로 평가한 자신의 저서 <The Power of Nations in the 1990s: A Strategic Assessment> 에서 국력를 계산하는 방정식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Power=(Critical Mass + Economy + Military) x (Strategy + Will) 이다. 한국말로 풀어보면 이렇다: 국력=(국토 및 인구 + 경제력 + 군사력) x (전략 + 의지). 클라인은 미국, 중국, 러시아, 카나다, 호주, 브라질 강대한 국토를 갖은 나라에 국토면에서 100점 만점을 주었으며 인구 1억이 넘는 나라에 인구 면에서 100점 만점을 주었다. 경제력은 미국에 200점 만점을 주고 다른 나라들의 경제력을 미국에 비교하여 상대평가하였다. 군사력은 미국과 러시아가 100점 만점이었으며 이를 근거로 다른 나라의 군사력을 상대평가하였다. 이렇게 계산해 보니 국력계산 방정식의 앞부분에 해당하는 점수에서 미국은 500 점 만점을 받은 반면 국토면적, 인구, 군사력에서는 모두 만점을 받았으나 경제가 이에 미치지 못한 러시아는 410점밖에 받을 수 없었다.

클라인이 제시한 방정식의 뒷부분은 전략 (S) 과 국민의 의지 (W) 를 더한 점수이다. 그는 S 와 W 를 합한 점수가 1이 나오는 것을 기준으로하여 이것이 강한 나라에는 가산점을 주고, 이것이 약한 나라에는 감점을 하는 방식으로 국력의 뒷부분을 계산했다. 예를 들자면 정치적, 군사적으로 영세 중립국이지만 자신을 침략하는 세력이 있다면 끝까지 항전할 수 있는 전략과 의지가 분명한 스위스에는 1점 만점에 1.5 점을 준 반면 전략과 의지가 없는 버마, 앙골라등의 나라는 0.4점을 주었다. 클라인의 공식을 월남전에 적용한다면 초강대국인 미국이 국토, 인구, 경제력, 군사력에 있어서 비교 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열등한 월맹에 패배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그 이유는 호치민의 전략적 리더십 아래 게릴라전에 탁월했으며 조국 해방을 위해 목숨을 초개 같이 내어 놓겠다는 의지가 강력했던 월맹에 비해 미군은 정규전에만 강할 뿐 게릴라 전략이 없었으며 목숨을 걸고 월남을 지켜야 한다는 의지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술이나 의지가 0 이었다면 방정식 앞자리 수자가 아무리 컸다 할찌라도 이에 0 을 곱한 국력의 수치는 결국 0일 뿐이다.

남한의 인구는 북한의 두배이며 경제력은 50 배가 넘는다. 군사력의 양은 북한이 남한을 앞서나 무기의 체계, 무기의 성능, 연간 국방예산등 군사력의 질은 남한의 그것과 비교 조차 할 수 없이 낙후되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북한은 남한을 두려워해야한다. 그런데 실제는 그렇지 않다. 6.25의 기억 때문인지 오히려 남한이 북한을 두려워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이 현상을 클라인의 방정식에 대입해 보면 이해가 가능하다. 남한이 북한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비록 전쟁을 즐기지는 않지만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면 결전하겠다는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자유와 평화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자유와 평화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목숨 조차 내어 놓겠다는 의지가 있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신성한 전리품이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강력한 의지가 식민지 미국을 200여년 전 세계의 초강대국이었던 영국을 꺾고 독립을 쟁취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었다. 의지가 0 이면 국력은 0 이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단1:8-9). 리더로 성장하려면 뜻을 정해야 한다. 뜻을 정했다는 말은 의지를 굳건히 세웠다는 말이다. 감정에 휘둘리지말고 탁월한 리더로 성장하기 위해 자신을 훈련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라. 성장과 발전의 시작은 의지에 달려 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것은 만고 불변의 진리이다. 새해에 정한 개인적 발전을 위한 목표가 이제쯤 작심 3일로 변해버렸다면 다시 뚯을 세우라. 그리고 정진하라. 자신의 의지를 분명히하고 정진하는 리더는 자신과 조직을 발전을 반드시 가지고 올 것이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인간을 구원하려는 강력한 하나님의 의지 표현이다. 의지력이 강한 리더만이 자신과 자신이 이끄는 조직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다.